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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 유감-- 모두를 위해 죽어서 먹을 음식도 내가 고른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나라는 산 자의 나라가 아니라 죽은 자의 나라라고...
온 국민의 축제처럼 북석거리는 설이나 추석은
사실 모두 경건한 제례가 그 중심에 서있는 날이다.
때문에 날짜를 못 맞추면 버르장머리없는 놈이 되기 일쑤고
괜스레 까불었다가는 본데없는 상것 며느리 되기 십상이다.

온 가족이, 특히 노인네들이 이런 명절을 설레게 기다리면서도
꼭 명분은 돌아가신 어른에 대한 흠모의 정을 나누기 위함이다.
할아버지 말씀이 "할머니한테 잘해라."
할머니 말씀이 "할아버지한테 잘해라."는 헷갈리는 주문처럼
우리네 감정은 내가 주인공이 되는 축제라는 건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과연 동방예의지국답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는 떨어져 있었던 가족과 만나 부대끼며 오랜만에 혈육의 정을 느끼고파,
또는 차마 말못하고 목만 길어지신 부모님을 이 때나마 뵈려고
날 잡아서 전 국토를 주차장으로 만드는 대장정을 나서는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 중 얼굴도 뵈온 일 없는 증조 할아버지나 고조 할아버지 제사가 중해서
먼 길 마다 않고 바삐 길을 재촉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기실은 돌아가신 조상을 핑계로 살아 계신 조상을 만나러 가는 자리이지 않는가.

여기까지 말하면 내가 내내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추도식만 지낸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우리집은 어느 양반 댁의 종가이다.
골수 종가집이 따로 있어 수십대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종가의 본분을 다할 일은 없으나
그래도 설날 아침이면 차례상을 네 번이나 바꾸어야하는 그런 집이다.
어렸을 때부터 한 두 달이 멀다하고 젯상에 올릴 각색전을 부치는데는 이골이 났고
큰 들통에 북어 다시마 무 고기 넣고 푹푹 우린 탕국 맛을 그리워할 줄도 안다.

홍동백서, 어동육서... 하며 부엌에서 장만된 음식을 꼬마 적부터 날랐고
겨울엔 검은 두루마기, 여름엔 하얀 두루마기를 걸치고
근엄하게 제례를 주관하시던 아버지가 외려 더 익숙한 그런 어린 시절을 가졌다.
때문에 내세울 것도 없는 지금에 와서는 차라리 고풍스럽게나마
격식을 아는 제사를 모실 줄 아는 것으로 나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높일 판인데
뜬금없이 제사상 유감이라니 웬 망발인가.

그 이유는 나의 늙으신 부모님 때문이다.
어쩌다가 딸을 넷이나 두신 우리 부모님은
그 딸들이 시집들을 가기 직전에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처지였다.
사람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는 아침녘에 김치만 맛있게 익어도
나갔다가 사람을 열 명 씩 몰고 오곤 하셨는데
비록 입은 나왔지만 한 시간 내에 한 상 떡 부러지게 차려 들일 손이 있었고
집안 대소사에 맘만 먹으면 화기애애 수다발을 세우며 서로 손을 재게 놀려
어느새 역사를 이룩하곤 했던 화려한 시절이었다.

수다 만큼 웃음도 많아서 언제나 시시한 꼬투리 하나까지 붙잡고 깔깔대다가
언젠가는 심사 사나운 동네 아저씨가 대문을 발로 쾅쾅차며 부리는 행패를 받은 일도 있었다.
살기 힘들어 죽을 판인데 니넨 뭐가 그리 맨날 재밌냐는게 그 주사의 이유였다.
부모님은 때로 이렇게 시끄러운 족속들에게 밀려
귀가 멍하고 머리도 아프다고 기가 막혀 하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 즈음에는 크리스마스 파티 한다고 동짓날 단팥죽 끓여먹는다고
말만 하면 안 되는 게 없는, 인력이 수두룩한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런 날들을 뒤로하고 그새 머리가 더 하얗게 세어버린 부모님은
정적이 가라앉은 두 분만의 집에서 조용히 차례상을 준비하시고 있다.
하나 있는 며느리가 아쉬운대로 때마다 와서 그 자리를 대신하고는 있으나
아직은 제 두 아들놈 추스리기도 버거운 마당이다.
그런대도 하던 버릇대로 수정과 식혜에 약과 약식
줄줄이 어린 것들 오면 입다실 유과까지 곁들여 사위들 마른 안주까지 비상으로 챙기시고
젯상에 오를 음식 장만 생각에 이젠 어릿어릿해진 몸과 마음이 다 바쁘시다.

매번 죽도록 만들어도 먹을 건 왜 그리 없는지
차례나 제사 후에 먹는 식구들 상은 사실 젓가락 갈 데가 별로 없다.
각색전과 삼색 나물 고기적도 안 반가운 판에
탕국에 밥 말아 시원한 물김치 떠먹으면 더 이상 먹고싶은 마음도 안 생긴다.
하루종일 지지고 끓이고 했던 게 다 어디 간 것 마냥 억울하다.
차라리 그 시간동안 냉채나 닭찜 또는 지난 번에 배웠던 요리 자랑이라도 했더라면
힘들여낸 시간과 노력이 그나마 빛이라도 날 터인데
이건 그냥 '차린 것도 없이 힘만 들었네요' 그 자체다.
괜스레 화가 나서 불퉁거린다.
우리 이제 과감히 메뉴 좀 바꾸자고...

온 식구가 모일 날은 그나마 명절이나 제삿날이 대부분인 까닭에
매번 '차린 것도 없이 힘만 들었네요'와 '먹은 것도 없이 배만 부르네요'의 행진에는
주걱 든 사람도 힘이 빠질 일인 것이다.
그 억울한 일을 늙은 엄마가 아직도 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집안 제사는 내가 잊고 있던 그 순간에도
종근당의 시계처럼 쉬지 않고 파도처럼 엄마를 덮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가서 돕는다 한들 세트메뉴로 딸려온 사위 손주 뒷치닥거리를 빼고 나면
언제나 손익계산 제로 상태일 뿐이다.

그러다가 명절이라고 텔레비젼에 소개된 차례상 차리기가 눈에 띄었다.
'첫 줄엔 뭐를 놓고 포는 머리가 어느 쪽을 향하게 하고…'
그 사이에 늙었는지 나는 그 상을 내가 받을 상으로 착각하고 보았다.
사실 살아갈 날들보다는 살아온 날이 더 많은 생의 전환점을 도는 즈음의 내가
가당찮은 생각을 한 건 아니지 싶은 마음도 든다.
그런 마음으로 그 상을 보니 '에게∼'였다.
거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한가지도 없었다.
내가 단지 죽었다는 그 이유만으로 식성까지 달라질 일이 있으랴?
내가 귀신이 되어 밥을 먹으러 왔대도 여전히 '먹은 것도 없이 배만 부르네요'하고
눈꼬리가 올라가 얍얍거리고 날라갈 판이었다.

누구 좋으라고 그 별 볼일 없는(?) 음식을 법도에 따라 만들어놓고
어쩔수 없이 제사를 떠맡아 아직도 주관을 해야하는 노친네와
내려온 풍습을 지키는 것이 시집에 대한 거대한 봉사라고 여기며
명절 증후군이라는 생색을 입에 담고 입을 내미는 며느리를 양산하는 것일까?
이쯤 되면 이제 노후가 아니라 사후를 염려해두시는
시아버님의 혜안이 존경스러워진다.
막내아들로서 제사 법도가 버겁기만 하시기도 했겠지만 매번 이러신다.
"내 제삿날에는 이런 거 다 치우고 딱 세 가지만 챙겨라.
엄청 맛있는 참치회, 갈비찜 그리고 좋은 와인!!"

부모 좋아하는 건 자식도 다 좋아하는 게 집안 입맛이다.
벌써부터 맛있는 참치뱃살과 갈비찜을 놓고
뒷풀이로 와인 따를 생각에 즐거워지는 후손들이다.
그러면서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지…
물론 풍습이나 법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서슬퍼런 것이기에
그런 날들이 금세 올랑가는 나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우리는 우리가 받을 제사상의 메뉴를 하달할 필요가 있어진다.
언젠가는 돌아가신 조상이 되어 이 땅의 후손들이 바치는 제사상을 받을 우리가
먼저 정해주는 것이다.

"얘야, 나 죽으면 우리 식구가 온통 잘먹는 이거, 저거, 그거와 뭔 술 따르고
너희들 먹는 상에 수저 하나 같이 놓고, 잠시 묵념하고 같이 먹자.
뒷풀이로 내 슬라이드 꼭 돌려라...." 등등의.
오는 길도 힘드니까 날짜도 아무 때나 일정하게 정해놓는 거다.
몇 월, 몇 월, 몇 째 주 하는 식으로 각기 다르게 말이다.
설마 내가 똥물에 머리만 내놓고 몇 천년씩 산다는 지옥에 빠져
죽은 날 하루만 겨우 겨우 허락 받아 외출 나오기야 하겠는가.
아마 언제나 저희들 사는 꼴을 보느라 배회하겠지.
제사상 받을 영혼이 있다면 말이다.
그 날을 내가 모를 수야 없을 것이다.

설날의 분주한 아침을 맞아 흰머리로 허리를 두드려가며
차례 준비에 여념이 없으실 엄마 생각에 이렇게 상상에 날개를 단다.
그렇게만 된다면 시댁 봉제사로 바빠 친정 엄마 홀로 두는 이 땅의 며느리들도
심통난 마누라 눈치 보면서 미리부터 설설 기어야하는 이 땅의 죄 없는 낭군들도
화기애애하고 평화로운 가족간의 축제를 마음놓고 즐길 수 있을텐데 말이다.


 
۾ :wwfma(wwfma@hanmail.net) 2002-08-23 09: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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